작업은 설레임이어야 한다
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,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 기쁨을 준다는
것은 극히 당연한
말 같지만, 실상은 이를 충족하기가 만만치 않습니다.
다완을 제작하면서 수 없이, 왜 내가 다완을 만들까? 어떤 다완을 만들까? 하고 되뇝니다.
저는 그냥 그릇다운 그릇을 만들고 싶습니다.
그리고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릇, 작은 것일 지라도 새로운 시도를
통해 다른 맛을
보여드리고 싶거든요.
내가 그러한 작업을 하고 있구나 하고 느낄 때가 바로 설레임이 있는 작업을 할 때입니다.
당연 하다시피 예측이 되는 작업은 의례 하는 일의 연장이고, 재미가
반감됩니다.
크던 작든, 성공이던 실패든 제작 과정의 수고는 설레임으로 많은 보상을
줍니다.
지난번에 라꾸 작업한 무유 다완 및 그 위에 살짝 유약을 입힌 다완들 또한 기존에 거의 행하지 않는 방법이라,
찻그릇 자체의 의미도 있을 뿐더러 분명 순수한 흙 맛과 어우러진 차 맛이 색다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.
이번
작업 소개해보면 이렇습니다.
수 많은 분들이 전통 다완 재현에 힘 쓰시고 하십니다.
분명 끊어진 전통의 맥을 잇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.
또한, 전통의 계승 발전을 위해서도 모태가 되니 중요하구요.
그리고 그 뜻을 이루어 존경 받는 분들이 계십니다.
그리고 이제 어찌보면 재현을 위해 옛 방식 그대로의 답습은 제겐 의미가 없지요.
왜냐하면 저 또한 흙, 땔감, 물
등 같은 재료 및 환경을 위해 그 쪽으로 꼭 가야만 하기 때문입니다. 그렇치 않고선 재현은 힙듭니다.
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해 왔던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것을 만들지 못한 이유니까요.
즉, 토속적인 것은 그 외의 어느 곳에서도 흉내 조차내기 어렵습니다.



어디서든 그 토속적인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있다면, 그 또한 가치가
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.
현재의 작업장 위치가 강원도입니다.
물론 여기도 당연 흙이 있지요.
주변을 두루 돌아보며, 혹 하는 마음으로 흙들을 조금씩 채취하여 왔습니다.
수비하고, 반죽하여보니 일단 성형에는 큰 무리가 없습니다.
이제 이것을 건조하고, 소성을 할까 합니다.
잘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.
앞서 말씀드렸듯이 설레임으로 만족합니다.
그 결과는 다음에 더 말씀드리겠습니다.
_土牛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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